아름다운 외모로 당시 유럽 역사를 뒤바꿔 놓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등장
이집트의 후반기기는 강성 했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아 극신한 혼란의 시기 였습니다. 내부 세력과의 반란과 이민족의 잦은 침입은 이미 약해진 파라오의 지배력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파라오 및 당시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더이상 이집트를 통치하기 힘든 것을 깨닫고 외부 세력에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 나라가 바로 로마였고, 이 후로 이집트는 사실상 로마 속국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권력층에 등장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와의 만남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제대로된 파라오를 지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동생과의 권력 다툼을 하게 되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동생을 제압하기 힘들었던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한명의 장군을 유혹하게 됩니다. 이 장군이 바로 그 유명한 로마의 카이사르 였습니다.
그녀는 카이사르를 유혹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권력자에게 바치는 선물로 바치게되고, 카이사르의 마음을 뺐는 것에 성공한 클레오파트라는 마침내 이집트에서의 권력을 손에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암살을 당하게 되고,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사이에서 난 자신의 아들을 꼭두각시 파라오로 임명하고 자신이 뒤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안토니우스와의 사랑
이집트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그녀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카이사르가 죽고 나서 이집트를 로마에서부터 보호해줄 권력자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또한번 운명같은 남자가 찾아오니, 그는 바로 카이사르 사후 로마의 권력을 차지하게된 안토니우스 였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근방에서 전쟁을 치루는 와중에, 군대 정비를 위해 이집트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클레오파트라와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빠져버린 안토니우스는 이후, 그녀만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안토니우스는 로마로 귀환할 생각도 하지않고 무려 일년 동안,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에 빠진체 이집트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집트 안에 로마의 최고 권력자가 군대를 주둔한채 머물고 있으니, 해당 기간 동안 로마를 포함하여 이집트를 위협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로마 내에서 점점 불만이 쏟아지게 됬고, 그의 장인이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이런 사위의 행동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옥타비아누스의 인내심을 한계에 다다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우스의 딸과 이혼을 통보하고 이집트에서 아예 살아갈 것을 알려온 것이었습니다. 이와함께 안토니우스가 다스리고 있던 로마 세력안의 땅까지 이집트 영토로 포함시키려하자, 옥타비아누스와 로마 권력자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전잰 선포를 하게 됩니다.
앤트니움 전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죽게된 전쟁은 앤트니움 전투라고도 불리며, 고대 역사에서 유명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전쟁은 로마의 황제인 옥토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동맹국으로 이루어진 로마의 군대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지휘하는 이집트의 연합군 간의 대결로 벌어졌습니다.
앤트니움 전투는 31년 BC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앤트니움에서 치러졌습니다. 옥토비아누스는 로마의 대규모 군대와 함께 전장에 나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싸웠습니다. 전투에서 옥토비아누스의 군대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도주하려 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배신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궁전에 갇혀 살해될 운명을 선택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을 따르지 않음에 절망하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